얼어붙은 허드슨만 속으로
오로라 탐험여행 7일째 (1월 28일 화 CST=KST-15시간): 처칠, Ithaca 탐험
{ 여행 중 작성하는 초고입니다. 여행이 끝나고 나중에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
28일에는 이곳의 유일한 렌터카 회사에 4*4 트럭을 주문하고 숙소로 '배달'을 요청했습니다. 점심 무렵 누군가 현관 문을 열며 "영우?"하고 외치더군요. 돌아보니 한 여자분이 서계셨습니다. 렌터카 회사 주인인 줄 알고 인사하며 다가가는데, "I'm Belinda!"라고 외치며 환하게 웃으시더군요. 이 숙소인 Tundra Inn & Pub의 주인입니다. 너무 반가워 인사를 하려니, 와락 껴안으시네요. 국내에 있을 때부터 이메일로 처칠 여행에 대해 많은 것을 문의하고, 숙소로 여러 물품을 직접 주문하기도 해서 많은 신세를 졌거든요. 그렇기도 하지만 정이 많으신 분 같습니다.
잠시 후 또다른 여자분이 오셨어요. 이번엔 렌터카 회사에서 오신 분입니다. 차에 대해 설명을 듣는데, 차를 운행하지 않을 때에는 꼭 플러그를 꽂아 놓으라고 합니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나가서 보여주네요. 차 본넷에 전원 플러그가 삐져 나와 있습니다. 그걸 숙소 주차장 쪽에 설치되어 있는 콘센트에 꽂으라는 거에요. 겨울에는 시동 꺼진 채로 보통 한 시간 이상 있을 경우 차 시동이 안걸린답니다. 그래서 차를 덥혀주기 위해 콘센트를 꽂는 거였습니다. 추운 데서 살아가려니 이런 독특한 아이디어도 있네요.
차를 받자 마자 장비를 옮겨 싣고 완전 군장을 했습니다. Ithaca(http://en.wikipedia.org/wiki/Ithaca_(ship))라고 해서 1960년에 허드슨 만에서 좌초한 선박까지 트레킹을 할 계획이거든요. 가는 길에 물론 여기저기 들르며 사진 촬영에 적합한 배경지도 찾아 보았습니다. 그렇게 다니던 곳 중에 개들이 떼로 묶여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 때 체감온도가 영하 50도에 육박했는데 그 칼바람을 맞으면서 개들이 덜덜 떨고 있더라구요. 아마도 썰매를 끄는 개였던 것 같습니다. 그 중 한두 마리는 풀려 있었는데 아마도 대장 개가 아닐런지.. 그런데 그 추운 곳에 개들을 그렇게 묶어놓고 있어도 되는 건지.. 마음이 짠하더군요.
차를 계속 몰아 처칠의 동쪽으로 10여 km를 가니 버려진 Radome이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길을 빠져나와 더 들어가니 그곳에도 역시 개들이 집단으로 묶여 있더군요. 덜덜 떠는 개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저는 차에서 내려 Ithaca를 향해 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해변에서 허드슨 만으로 2-3km 나간 곳에 있습니다.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온통 여미고 조인 다음 출발했는데, 시야가 트여서 금새 도착할 것처럼 보이는 곳이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 해지는 시간이 4시 30분이라 그것에 맞추어 대략 계산을 하고 트레킹을 시작한 것이지만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워낙 두껍게 얼어붙은 허드슨만의 바다 얼음이 깨질리는 없지만 때로 표면에 크랙이 생기면서 나는 소리에 놀라기도 하고, 드물게 북극곰이 해변으로 접근해 사람을 해한다는 말을 들은지라 혹시 모를 곰의 등장을 경계하며 종종 걸음으로 다가갔습니다. 가던 중간에 카메라를 켜서 동영상을 찍은 것을 유튜브에 올려놓았습니다(업로드가 완료되면 다음 링크에서 보입니다).
http://youtu.be/I0TGKSEu2a4
업로드 시작했는데 완료되는 데까지 230일 남았다네요 ㅡ.ㅡ). 멈추지 않고 롱테이크로 촬영했습니다. 동영상을 보시면 카메라도 저 따라서 두리번 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제 뒤로는 해무리(halo)와 무리해(환일, parhelion)가 떠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국내 신문기사에서 가끔 '해외 어디에서 환일현상이라는 드문 현상이 관측되었다~!!'라며 사진을 실은 기사가 뜨곤 합니다. 저 역시 국내에서 자주 보기 어려운 현상이었구요. 그런데, 여기선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그냥 계속 보입니다. 판상 빙정이 아주 풍부한 곳이니까요.
Ithaca에 도착했을 때엔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습니다. 저는 바다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아주 두려워합니다. 어릴 적에 익사당할 뻔한 상황에서 구조된 일이 많이 있어서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있습니다. 깨질 리 없는 얼음 위에서 '내가 지금 바다 위에 있는 거잖아'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괜찮아.. 괜찮아..'하고 다독였습니다. 부서진 배 옆구리를 따라 들어가 보니 마음이 더 섬뜩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붉게 녹아내린 배 안에서 본 하늘은 유난히 더 밝아 보이더군요. 날이 맑았으면 그 하늘은 정말 파랬을 것 같습니다. 저는 배를 왼쪽 옆구리에서 오른쪽 옆구리로 관통해 나와 한바퀴 빙 돌아 둘러보곤 서둘러 몇 컷 찍고 줄행랑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럴 거면 왜 갔나 하는 생각도 지금은 드네요 ^^
돌아오는 길에는 곧 어두워질 일이 근심이었습니다. 고위도로 올수록 해가 동일 고도를 내려오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립니다. 우리나라에서 '저 정도면 곧 해가 지겠지'하는 상황이어도 여기에선 꽤 오래 지속됩니다. 하지만 경험은 마음에 새겨져 있는 것. 서쪽으로 돌아가는 제 앞에 거대하게 서 있는 무리해가 천천히 오라고 용기를 주는 듯해도, 마음엔 조금씩 불안감이 커져 가는 거지요. 다행히 바다를 가로지르는 동안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해변에서 차 있는 곳까지 오는 길이 의외의 복병이었습니다. 차에서 출발해서 바다로 갈 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눈이 푹푹 꺼지는 겁니다. 제 발자국을 발견해서 그 길을 따라 그대로 돌아오는데도 눈이 푹푹 꺼집니다. 이렇게 되면 걷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아마 상황이 달라진 건 아닐 겁니다. 그만큼 제가 지쳤기 때문이겠죠.
차에 도착해 보니 안도하며 그제서야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칼바람을 등지고 갔다가, 지친 상태로 그 바람을 안으며 돌아올 때에는 정신이 없어 잘 몰랐습니다. 차에 타고 보니 입김이 모자와 옷 여기저기에 얼어붙어 고드름을 만들었더군요. 밖은 춥지만 밀봉한 상태로 갔다 오니 몸 속 여기 저기도 축축합니다. 그 상태로 몸을 서서히 말리며 마을로 돌아오는데 운전석 문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가 신경쓰이네요. 차 문을 열면 강풍에 문이 활짝 젖혀지기 일쑤입니다. 이런 일이 많이 되풀이 되었을 거고, 그러다 보니 문짝과 차체가 밀착되지 않고 틈이 생겨 있습니다. 소리 뿐 아니라 바람도 숭숭 들어옵니다. 상태가 좀 심해서 렌탈 회사에 들렀지만 만나지 못하고 숙소에 와서 휴대전화에 연락했더니 차를 바로 바꿔주네요. 바뀐 차는 그런 면에서 한결 나았지만 앞 유리가 깨져 있고 차창을 수동으로 열어야 합니다. 그래도 바람 안드는 게 어디입니까? ㅎㅎ 하루 14만원씩 주고 빌리는 차이지만 바라는 건 참 소박합니다. ^^
처칠 동쪽 20여 km 지점에 Churchill Northern Studies Centre가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투명한 원형 돔 안에서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겨울 영업을 하는 Seaport 식당에 들러서 저녁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낮에 지나갔던 길을 지나쳐 이 연구소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는 다행히 별이 초롱초롱해서 기대를 했지만, 이곳 날씨는 빠르게 변합니다. 도착해보니 하늘에 구름만 가득했습니다. 게다가 연구소 문도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사전 예약이 필요한 곳이라 예약 없이는 방문이 힘들 것 같았습니다. 어차피 그곳에서 관측할 계획은 아니었고 날씨도 허락을 하지 않으니 미련을 갖고 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촬영에 적합한 장소를 선정하느라 여기 저기 다니며 시험 촬영을 했습니다. 오로라 활동이 "Active"라고 예보된 날이어서 날만 좋으면 멋진 오로라를 보았을텐데, 하늘이 허락을 하지 않는군요. 하지만 때로 구름이 갈라지는 곳에서는 자정이 몇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녹색의 오로라가 문득 문득 모습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처칠에 돌아와서도 몇 곳을 더 둘러보았습니다. 이미 밤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는데 서쪽 해변 끝부터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며 시험 촬영으로 배경을 조사했습니다. 4륜 구동이라 힘이 좋고 웬만한 눈길을 무리 없이 다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두 군데 괜찮은 곳을 찾은 소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로소득이 아니라 불운소득이라고 해야 하나... 곧이어 불운이 따랐습니다.
이곳에선 돌풍 때문에 이미 내린 눈이 여기저기 이동합니다. 도로를 지나다보면 돌풍에 쓸려온 눈이 두껍게 쌓여 있는 곳도 있습니다. 두대의 작은 불도저(Bobcat)가 이 작은 마을 여기저기를 다니며 날!마!다! 눈을 치우지만 그래도 어디엔가는 그렇게 눈이 쌓인 곳이 있습니다. 밤이라 눈에 잘 뜨이지 않았는데 차가 그런 곳에 덜컥 걸려버린 겁니다. 쌓인 다음 얼어붙어서 단단하게 있다가 차 무게에 무너지면서 밑으로 푹 꺼져버립니다. 운전석에서도 그 충격이 느껴지며 '이건 보통 함정에 걸린 게 아닌 걸...'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조심스레 전진과 후진을 되풀이해도 바퀴는 헛돌기만 합니다. 삼각대를 꺼내서 딱딱한 눈 표면 여기저기를 찍어내고 떨어져 나온 파편을 도로 밖으로 쳐내면서 길을 확보해보지만 차는 도무지 빠져나올 줄을 모릅니다. 불운은 겹쳐서 그곳은 차량이 다니지 않는 아주 외진 곳이고 걷기에는 마을까지의 거리도 꽤 되었습니다. 제 휴대폰은 이곳에서 터지지 않습니다. 로밍을 해왔지만 서비스 불가 지역이라고 뜹니다.
그런데 마침 맞은 편에서 차량이 한 대 접근해 왔습니다. 그 차에 다가가서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그 운전자는 제 렌탈 회사에 전화해서 구조요청을 하겠다고 하고는 오던 길을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점이었지만 마을로 돌아가기보다는 그래도 다른 차가 다가와주기를 기대하며 엔진과 등을 켜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잠이 들었나봅니다. 누군가 운전석 문을 여는 기척에 잠을 깼습니다. 낯선 사람이 문을 열고는 괜찮냐며 근심스레 바라보더군요. 그 차에는 그의 아내와 딸이 타고 있었는데, 가족이 모두 나와 딸은 운전대를 잡고 나머지는 저와 함께 제 차를 밀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저를 숙소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오니 이곳에 투숙하면서 마을에서 일하는 두 분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있었던 일을 말하며 그런 일을 해주는 회사가 있는지 물어보니, 이곳의 북극곰 관광회사에서 Tundra Buggy를 모는 분이 내일보다는 지금이 낫다며 저를 앞세워 일어섭니다. 체인을 준비하여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또 의외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 분의 차가 4륜 구동으로 전환되지 않는 겁니다. 2륜 구동으로는 제 차를 꺼낼 수 없습니다. 소득 없는 시도만을 계속하던 중 또다른 차가 뒤에서 다가왔습니다. 이미 새벽 2시가 다가오는 그 시점에 오신 분은 처음 저를 발견하고 구조요청하러 간 분이었습니다. 렌탈 회사에 연락하기 위해 애써봤지만 연락이 안되어서 자기가 로프를 들고 왔다는 겁니다. 4륜 구동으로 작동하는 이분의 차량에 제차를 로프로 연결하고 힘차게 잡아 당기기를 몇번을 하니 차가 따라 나오더군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저를 숙소에 데려다 준 그분과 가족께 감사하고, 제 말 듣고 달려나와선 안되는 2륜 구동으로도 애써준 그분께도 감사하고, 구조요청이 안되니 본인이 직접 나와 끌어 당겨준 그분께도 감사하고, 잡아당기니 끌려나와준 차에게도 감사한 겁니다.
숙소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서 그 분들 이름을 생각해보니, 한분 밖에 기억나지 않습니다. '디디에이'.. 제 차를 꺼내준 분은 꺼내주자 마자 바로 출발하여 인사도 못 나누었고, 우리 숙소에 사는 Tundra Buggy 아저씨 이름은 아직도 모르고 있네요. 다만, 저를 데려다 준 그분의 이름은 숙소로 오는 동안 물어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기 쓸 게 너무 많았던 길고 긴 하루였습니다.
조영우
어스블로그 | 푸른행성의 과학 | Youngwoo Cho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