툰드라로 가는 열차
오로라 탐험여행 3일째 (1월 24일 CST=KST-15시간): 톰슨-처칠
{ 여행 중 작성하는 초고입니다. 여행이 끝나고 나중에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
아침 9시 무렵 톰슨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더 추웠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심했습니다. 추위에 대한 공포의 농도가 더 진해졌습니다. 철도역까지는 거리가 꽤 됩니다. 2-3km 쯤 될 겁니다. 그레이하운드 직원에게 철도역에 가려면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봤습니다. 걷는 건 불가능하니 택시를 타야 한다면서 ‘택시 불러줄까?’합니다.
그 분 도움으로 택시가 도착했습니다. 가방 네 개를 끙끙거리며 싣는데, 너무 추워서인지 운전 기사가 도와주질 않네요. 아무튼 다 싣고 나서 택시에 타니 저에게 현금이 없다는 게 기억나더군요. 그런데 운전기사는 현금만 받는답니다. 저는 짐을 다시 다 내렸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그레이하운드 건물 앞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ㅡ.ㅡ
‘아차! 현금 서비스가 있지!’
제가 쥐고 있는 카드는 은행에서 발급받은 카드가 아니어서 제 은행계좌에 접근할 수 있는 카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현금서비스는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레이하운드 건물에 있는 ATM에 가서 현금서비스를 시도해봤더니 다행히 되더군요. ‘아 이제 철도역에 갈 수 있다!’
그레이하운드 직원에게 다시 택시 콜을 요청하고 잠시 기다리니 또다른 택시가 옵니다. 이번 운전기사는 선뜻 내려서 제 짐을 실어줍니다. 아까 분도 그렇지만 이분도 중동 쪽에서 오신 분 같았습니다. 물어보니 인도에서 왔다는군요. 인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성장한 다음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름은 Bac Preet. 그런데 이 분 말씀으론 지금 철도역이 문이 닫혀서 못 들어간다고 하네요. 11시 30분은 지나야 문을 열 거라고 합니다. 그 사이에 쇼핑몰에 가서 시간을 보내면 어떻겠냐고 해서 그 분 말대로 가보니 월마트가 있습니다.
월마트에 들어가 아침 식사를 하고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해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월마트에서는 머리 전체를 뒤집어 쓰는 두건과 면도기도 샀습니다. 두건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월마트에 있는 것이 더 깊고 포근해 보였습니다.
Bac Preet씨에게 전화해서 월마트로 부른 다음 철도역에 갔습니다. 열차는 다섯 시쯤 출발하지만, 어찌 될지 몰라 좀 일찍 도착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정말 작은 역이더군요. 갑자기 버려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Bac Preet 씨는 저를 내려준 다음 짐을 옮겨주고는 작별인사로 악수를 청하며 “Good-bye brother!” 하네요. 아무도 없는 지독히 춥고 칼바람이 부는 작은 역 밖에 서서 저는 정말 형제가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역 안에 들어오니 포근해지며 근심이 좀 녹아듭니다. 저는 내심 무료 와이파이를 쓸 것을 기대했는데, 그러한 편의 시설이 전혀 없었습니다. 강촌에 있는 경강역 만한 크기의 작은 역이었고 직원도 표를 발급할 시간에만 나타났습니다. 대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햇빛이 창살을 통해 드리운 빛과 그림자만 바라보며 생각을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볕이 가득한 오래된 역에서 가만히 머물렀던 몇 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잠시 후 2시 열차가 떠납니다. 남자 승무원이 나타나서 묻습니다.
“North? or South?”
“북쪽! 처칠요!”
“음? 내 열차를 안타겠다고?”
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ㅎㅎ
남쪽으로 가는 열차에는 손님이 거의 없습니다. 두명 타는 것 같았습니다.
오후 5시가 가까워 오니 북쪽으로 가는 승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톰슨에서 처칠까지 가는 길에는 몇몇 마을이 있습니다. 톰슨에서 물건을 사서 들어가는 아줌마 아저씨이거나, 톰슨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주말을 맞아 집에 가는 학생들로 보였습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이누잇이거나 이누잇의 혼혈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사진에서 보아왔던 왜소하고 꾸부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골격도 비교적 크고 대범해 보였습니다. 한국인과 매우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버스에서 만났던 두 모녀,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 중에도 이누잇이 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영어가 매우 유창했고 행동거지나 매너가 캐나다의 다른 백인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캐나다인에 동화된 역사가 매우 길었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다섯 시가 되어 열차가 출발합니다. 열차는 천천히 역을 빠져 나왔고, 그보다 더 빠르지 않은 속력으로 나머지 여정을 달렸습니다. 그 옛날 비둘기보다도 못한 느린 속력으로 달리는 이유는 철로가 놓인 지반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지도를 보면 이 지역은 땅보다 호수가 더 많아 보입니다. 겨울에는 그나마 땅이 단단해지지만 여름에는 그보다도 훨씬 느리게 달려야 한답니다. 톰슨에서 처칠까지 500km 밖에 안되는 거리를 기차로 16시간 걸려 가야 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저에게 해준 사람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던 Parvez라고 하는 인도인입니다. Calm Air에서 근무하는데, 원래 비행기를 타고 처칠에 갈 생각이었는데 무슨 일이 있어 비행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2년 반만에 기차를 타고 들어간다고 하는군요. Parvez를 처음 만난 것은 제가 자리를 찾아 객차를 이동하던 중이었습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Parvez가 저에게 묻더군요.
“사진가에요?”
“네”
“한국인?”
“맞아요. 어떻게 알았죠?”
알고 보니 Bac Preet이 이 사람을 기차역에 태워다 주며 제 얘기를 했더군요. Parvez 말로는 처칠에 한국인이 너댓명 있답니다. 그 중 한사람은 자기와 함께 산다네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모두 처칠에서 일한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에게 들어 알고 저 사람에게 물어서 서로 다 알고 지내는 시골 동네 같았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거리에서 이렇게 작은 시골동네 풍경이 연출되다니...
저는 가는 길에 오로라를 볼 생각이었습니다. 미리 조사한 바에 따르면 투명한 돔이 있어서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볼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제가 탄 기차에는 그게 없었습니다. Parvez 말로는 기차에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 기차는 그 기차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 실망감! ‘하지만 어때! 가서 보면 되지!’
어제 밤에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오면서도 거의 잠을 잘 수 없었고, 낮에도 잘 시간이 없었는데, 기차를 타고 가는 길도 잠이 오지 않더군요. 30분씩 두세번 눈을 붙이긴 했지만 대개 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참 잘도 자더군요. 어떤 사람은 좌석 위 짐칸에 올라가서 자더라구요. 올려다보니 짐칸이 굉장이 넓직했습니다. 게다가 푹신하기까지. Parvez가 저더러 올라가 자라고 했지만 그럴 만큼 잠이 오진 않았습니다.
한참 여행하다 차창 밖을 보니 동쪽에서 그믐달이 떠오르며 무리달(mock moon, moon dog, paraselene)를 멋지게 만들더군요. 그걸 찍어보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차창에 비치는 실내등의 반사광 때문에 제대로 촬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거의 처칠에 도착할 때까지 그 멋진 풍경을 마음껏 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큰 기대까지. 이 상태로 권운이 유지되어 준다면 아침에 처칠에 도착해서 멋진 무리해를 볼 수 있는 거니까요.
조영우
어스블로그 | 푸른행성의 과학 | Youngwoo Cho Photography

